유럽연합(EU) 금융당국이 역내 은행에 대한 ESG 리스크 관리 규정을 마련하고 있는 가운데, 현지 은행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7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럽은행협회(EBF)는 “유럽 은행에만 ESG 규제가 적용되면 미국 은행과의 경쟁에서 겉잡을 수 없이 뒤쳐질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 은행들, ESG 리스크 강화되면 미국과의 경쟁에서 뒤쳐질 것
유럽 은행들이 ECB(유럽중앙은행)가 추진 중인 ESG 규제에 반발하고 나섰다. ECB는 유럽은행감독청(EBA)의 분석에 따라, ESG 리스크를 공시 등에 반영하도록 하는 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문제는 ECB의 새로운 규정에 따르면, ESG 리스크 평가를 은행의 재무제표에 대손충당금 형태로 반영해야 한다는 데 있다. 기후위기를 재무적 요소로 평가하게 되는 셈이다.
대손충당금은 회수불능채권을 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회계 계정을 말한다. 즉, 돈을 빌려주었는데 돌려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현 시점에서는 떼인 것으로 잠정 결정하고 대손충당금 항목에 넣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신용 등급이 낮은 채권이나 불확실성이 높은 채권에 대해서는 더 많은 대손충당금이 필요할 수 있다.
사업주 또는 투자자 입장에서 대손충당금은 신용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다. 부실 부채의 양을 추정함으로써 손실에 대비하고 수익성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현지 은행들은 규제당국의 요구가 지나치다는 반응이다. ECB가 추진 중인 규제안이 도입되면, 은행들은 기업 고객이 탄소 배출량 규제, 원자재값 상승 등 ESG 리스크로 디폴트를 선언, 채무 불이행을 할 경우를 예상하여 관련 리스크를 회계에 반영해야 한다.
EBF의 지속가능 금융 부문의 수석 정책 고문 데니사 에버마에테(Denisa Avermaete)는 ECB가 추진하고 있는 ESG 리스크 관리 조치가 “유럽에만 적용되는 도구”라며 “은행들은 계량화하기 어려운 리스크 대비를 위한 재정을 따로 적립해야 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후 리스크에 대한 ECB의 규제 프레임워크가 최종 채택되기 전에 은행의 ESG 리스크 관리를 회계상으로도 의무화하면 리스크 측정이 중복될 가능성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EBA는 지난 1월 유럽 은행의 ESG 리스크 관리 노력이 현재 ‘초기’ 수준이며 “EU가 지속가능한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대출기관의 건전성을 보장하기에는 너무 미흡하다”고 밝힌 바 있다.
유럽 은행 시장가치 저평가돼 있어… 규제 도입 시 더욱 악화될 것
ESG 리스크 반영해야… 이미 보고 시작한 금융기업도
한편 투자자들은 이미 유럽 은행이 미국 은행 대비 경쟁력이 낮다고 평가하고 있다. 블룸버그 데이터에 따르면, 월스트리트 최대 은행인 JP모건 체이스 앤 코(JPMorgan Chase & Co)의 시장가치는 장부상 자산가치의 1.9배다.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의 시장가치 또한 장부가치 대비 1.7배에 이른다.
그러나 유럽 최대 은행인 BNP파리바(BNP Paribas SA)의 시장가치는 장부 대비 0.7배에 불과하다. 도이치 뱅크(Deutsche Bank AG)의 경우에는 이보다 더 낮은 0.5배다. 유럽 은행들의 시장가치가 실제 자산가치보다 저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런던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loomberg Intelligence) 수석 은행 애널리스트 필립 리차드(Philip Richards)는 지난 6개월 동안 유럽 은행 주가가 지속 상승했지만, 여전히 미국 은행의 가치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유럽에서의 지속성이 회복되지 않는 한 따라잡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부분적으로 규제 리스크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은 최근 공화당 주도로 반(反) ESG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ESG 관련 가이드라인이나 규제들이 후퇴하거나 보류되고 있다. 여기서 유럽 은행에 또 다른 ESG 규제가 들어오면 격차는 점점 더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ECB는 이번 조치가 은행이 ESG 관련 신종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ECB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은행 가운데 약 4분의 3은 자연 환경 관련 리스크에 노출돼 있었다.
이미 ESG 관련 대손충당금 보고를 시작한 은행들도 있다.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은행 라보뱅크(Rabobank)는 2023년 재무제표에 ESG 리스크 관련 대손충당금으로 1360만유로(약 200억원)를 책정했다. 홍수나 가뭄과 같은 기후 재난에 의한 손실을 위해서다.
또 다른 네덜란드 은행인 ING 또한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ESG 리스크를 대손충당금 계상에 통합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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