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에너지기업 에넬(Enel)이 지속가능연계채권(SLB, Sustainability-linked bond)의 핵심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0일(현지시각) 블룸버그는 인류세 고정소득 연구소(AFII, Anthropocene Fixed Income Institute)의 최신 보고서를 인용, 에넬이 2023년 탄소 배출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보도했다.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란 2000년대 초 과학계가 제안한 개념으로, 온실가스 농도 급증, 질소 비료로 인한 토양 변화 등 인간 활동으로 인해 지구의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며 만들어진 새로운 지질 시대를 뜻한다.
AFII는 기후변화가 고정소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다.
지속가능연계채권, 운용 유연성 높아 빠르게 성장 중…
지속가능성과목표 달성 여부와 이자율 연동
글로벌 기후 목표 및 규제가 강화되면서 자본시장에도 ESG 펀드, 녹색채권 등 지속가능성 추구를 위한 다양한 금융상품이 등장했다.
지속가능연계채권(SLB)은 ESG 채권 중 하나로, 발행기관이 사전에 정의한 지속가능 성과목표(SPT, Sustainability Performance Target)의 달성 여부에 따라 재무 및 구조적 특성이 달라지는 채권이다. ESG 관련 프로젝트가 아닌 ESG 목표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른 ESG 채권과는 차이가 있다.
이처럼 SLB는 유연한 자금 운용으로 지속가능성 이슈에 대한 탄력적인 대처가 가능해, 2019년 처음 발행된 이후 2020년 국제자본시장협회(ICMA)의 자발적인 SLB 프로세스 지침 마련에 힘입어 급격히 성장해왔다.
자본시장연구원이 3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SLB 발행금액은 2019년 90억달러(약 12조원)에서 2021년 1603억달러(약 217조원), 2022년에는 9월까지 1053억달러(약 142조원) 규모로 늘어났다. 발행건수도 2019년 19건에서 2022년 337건까지 증가했다.
SLB는 지정된 평가일에 지속가능 성과목표(SPT) 달성 여부를 확인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재무적 인센티브가 적용된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식은 이자율의 상향(step-up) 또는 하향(step-down) 조정이다. 목표를 달성하면 이자율이 낮아지고, 실패하면 사전에 정해진 만큼 이자율이 높아지는 방식이다.
에넬, 전쟁 등 외부적 요인으로 지속가능 성과목표 달성 실패 예상…
추가 이자 부담 연간 약 365억원 발생 가능성
에넬은 31개국 7000만 고객에게 전기와 가스를 제공하는 이탈리아 에너지 회사로, 2040년까지 발전시설을 재생에너지로 전환, 가스 소매사업을 종료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19년 9월 세계 최초로 SLB를 발행, 2022년 9월까지 발행된 규모는 250억달러(약 33조원)에 이른다. 2위인 칠레보다 거의 4배나 많은 수치다.
그러나 AFII는 최근 보고서에서 에넬이 지속가능 성과목표(SPT)를 달성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유럽의 에너지 전환 속도가 지연되었고, 석탄발전 자산의 수명도 연장되었다는 것이다.
목표 달성에 실패하면, 에넬은 총 108억달러(약 14조원) 규모의 채권 이자율이 상승, 연간 2700만달러(약 365억원)의 추가 이자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는 SLB 시장에서 가장 높은 액수의 페널티다.
JP모건 체이스에서 약 20년간 근무한 AFII 리서치 책임자 조세핀 리처드슨(Josephine Richardson)은 에넬의 목표 달성 실패 예측을 두고 “이는 투자자와 기업에 매우 중요한 정보”라고 밝혔다. 에넬의 추가 이자 부담 가능성이 아직 채권 가격에 완전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초 금융부문 리서치업체 크레딧사이트(CreditSights)도 AFII와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에넬이 2024년 평가일까지 성과목표 달성에 실패하면, 1억5500만유로(약 2219억원)의 추가 이자 부담이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에넬의 2023년 스코프1 배출량 감축 목표는 KWh(킬로와트시)당 148g이다. 그러나 최근 공시 자료인 2023년 상반기 이후 수치는 173g이다. 이는 러시아 자산을 매각했던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약 25% 낮은 성과다. 리처드슨 책임자는 “우리는 에넬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일 수 있는 어떠한 투자나 인수 계획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에넬 측은 보고서에 대한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한편 AFII 보고서는 "지속가능 성과목표 달성 실패라는 리스크가 에널과 같은 거대한 규모의 회사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며, 2023년 말 목표 달성이 어려운 이유는 외부적 요인 때문"이라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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