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지속가능성 보고표준(ESRS)에 따른 공시 의무화가 2024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가운데, 산업계는 표준 도입에 대한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실제 지난 8월,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는 공시규제에 대한 부담이 과중하다는 산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기업이 중대성평가를 통해 정보공시범위를 취사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기업의 규모에 따라 정보를 단계적으로 공시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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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RS 규제완화에도 불구하고, 산업계는 여전히 ESRS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ESG교육전문업체 빈치 워크스(VinciWorks)가 글로벌기업 ESG담당자 1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수행한 결과, 77%의 응답자가 “ESRS 기준에 부합해 정보공시를 할 준비가 안됐다”고 답했다.
이에 책임투자미디어 RI(Responsible Media)는 유럽 내 주요 이해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ESRS표준 대응에 대한 현장의 의견과, 기업이 준비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상세히 살펴봤다.
TCFD 공시 자리잡는 데도 시간 걸려...
ESRS에서 요구하는 데이터 포인트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유럽 내 일부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이 ESRS 공시에 대해 조급함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과거 TCFD기준 도입의 사례를 살펴봤을 때, 새로운 공시기준이 산업계에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투자자 및 규제당국이 단기간에 과한 요구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영국 법무법인의 변호사는 “영국의 TCFD공시 의무화 사례를 보면, 이해관계자들은 공시 의무화의 첫해에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좋은 공시 사례가 무엇인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의견 일치가 이루어지기까지 3년가량이 걸렸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타 기업 보고서, 컨설팅 기관, 법무법인 등으로부터 정보를 습득하고 ESRS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다만 ESG담당자들의 경우, ESRS에서 요구하는 데이터 수집 체계를 수립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조속히 움직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IT업체 델(Dell)의 글로벌 ESG컨설턴트 록산나 카타(Roxana Cata)는 “ESRS는 기존 공시 기준보다 더 높은 수준의 데이터를 요구한다” 며 “예를 들어, 가치 사슬 내 공급망 노동자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는데, 기업들이 협력사로부터 지속가능성 정보를 일부 받고 있기는 하지만, 공시를 위해선 추가적인 데이터 포인트 확보 및 신뢰도 검증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전자기기 전문업체 필립스(Phillips)의 지속가능성 팀장 시몬 브락스마(Simon Braaksma)는 “ESRS의 기준으로 자사가 공시하고 있는 지속가능성데이터 포인트 950여 개를 검토한 결과, 약 30% 정도만 기준에 부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또한 ESRS기준의 요구사항으로 인해 데이터 포인트의 숫자도 950개에서 1144개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실제 필립스는 지속가능성 데이터의 조속한 개선을 위해 약 60여명의 인원을 투입하고 있다.
중대성 평가를 통한 정보공개범위 설정 기준 모호할 수 있어...
기업의 리스크와 기회 파악해 명확한 논리 구성하는 것이 중요
ESRS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이중 중대성 평가다. 특히, 지난 8월 발표된 개정안에서 기업의 중대성 평가에 기반해 공시항목을 취사 선택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중대성 평가의 중요도가 더욱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모든 정보공개를 의무화하는 것보다 이중 중대성 평가를 통한 선택적 정보공개가 기업 입장에서 더 수월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유럽의 ESG현직자들은 이중 중대성 평가를 통한 정보 선택에도 어려움이 따른다고 이야기한다.
기업 담당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이중 중대성평가를 통한 정보 선택의 범위다. 중대성 평가를 통해 정보 선택의 범위를 과도하게 넓게 설정할 경우, 사실상 ESRS내 모든 정보를 공개하면서 중대성 평가에도 많은 리소스를 투입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정보 선택의 범위를 좁게 설정할 경우, 기업에 내재된 ESG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차후에 곤욕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이중 중대성평가를 통한 정보 선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현직자들의 의견 또한 갈리고 있다.
KPMG스웨덴의 지속가능성 인증팀 총괄이자 유럽재무보고자문그룹(EFRAG)사무국에 소속된 크리스토퍼 라슨(Christorpher Larsson)은 “중대성은 기업의 특성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글로벌 기업의 가치사슬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지속가능성 분야가 중대 이슈에 포함된다”며 “기업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관계자와의 소통을 기반으로 어떠한 지속가능성 정보가 자사에 연관이 있을지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빅데이터 기반 ESG분석업체 데이터마란(Datamaran)의 혁신팀 총괄 도나토 칼라스(Donato Calace)는 “적절한 중대성 평가를 통해 중대 이슈 선정에 대한 매우 보수적인 기준을 수립할 수 있으며, 실제, 유럽 내 많은 기업들이 포괄적인 기준보다는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편”이라며 “기업의 ESG리스크와 기회에 입각해 정보 선택의 기준에 대한 명확한 논리구조를 수립하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적절한 증거를 제시한다면 정보 선택의 범위를 넓히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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