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팩트온이 지난 6월 12일 창간 3주년을 맞았습니다. 사실 2년째까지는 창간을 챙길 틈이 없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가 오롯이 성장하는 걸 지켜본 제 입장에서, 두 살짜리는 혼자서 안전하게 걷기란 참 힘들지요?
많은 분들이 묻더군요. “어떻게 창업할 생각을 했느냐”고. 그때그때 답이 다르지만, 공통적인 결론은 이렇습니다. “뭘 모르니까 했다”고. 회사를 창업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등기이사, 투자, 지분구조, 법인세, 부가가치세, 4대보험 등등. 저는 정말 기사만 잘 쓸 줄 알았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 무한한 실물경제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예전에는 “CEO는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CEO는 그만두고 싶어도 쉽게 못 그만두는 자리이구나” 생각합니다. 뉴스레터를 2주 동안 못썼는데, “좀 쉬겠다”는 공지를 못하는 바람에, 또 뜬금없이 구독자 분의 이메일 스팸을 하나 더 안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그냥 두었습니다. 되도록 쉬지 않고 뉴스레터를 쓰겠지만, 뉴스레터가 안 오면 ‘아! 동굴에 있고 싶은 것이구나’ 혹은 ‘칼럼 쓸 여유가 없을만큼 좀 바쁘구나’ 하고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 칼럼은 원래 지난 5월에 있었던 ESG 전문 평가기관인 서스틴베스트가 ‘2023 서스틴베스트 미디어데이’를 개최한 내용 후기를 쓰려고 한 것인데, 늦었지만 관련 내용을 좀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마침 한국과 EU에서 비슷한 시기에 ESG 평가기관 가이던스에 관한 내용이 보도되고 있네요.
EU, ESG 평가기관 컨설팅하지 말아야 규제 초안 발표
먼저, EU는 ESG 평가기관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제안했는데, 이는 S&P, 무디스, MSCI, 모닝스타 서스테이널리틱스 등 메이저 기업 ESG 평가기관의 사업 재편까지 강요할 수 있다고 로이터가 보도했습니다.
EU의 법률초안에 따르면, ESG 평가기관은 잠재적인 이해충돌을 피하기 위해 투자자들에게 컨설팅 서비스, ESG 평가등급 및 벤치마크 서비스 판매 등을 중단해야 합니다. 또 ESG 평가기관은 유럽증권시장당국(ESMA)의 승인과 감독을 받아야 하며, 새로운 규칙을 위반하면 연간 순 거래액의 최대 10% 벌금을 물릴 수 있습니다. 로이터는 “독립적인 운영을 하도록 하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 규칙은 해당 ESG평가기관들이 사업을 분리하도록 강요할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말하자면, 신용평가기관을 규제하듯이 ESG 평가기관을 강력 규제하겠다는 것입니다. 각 평가기관은 로이터에 의견을 밝혔습니다.
MSCI ESG 리서치는 성명을 통해 “(우리는) 등급을 제공할 때 독립적이고 투명한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고, S&P는 “IOSCO(국제증권감독기구)의 권고사항을 일관되게 이행할 것으로 믿으며, 그래야만 국가간 파편화를 방지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독일 보수당 의원은 마르쿠스 페버(Markus Ferber)는 “독립형(stand-alone) ESG 평가기관만 허용할 경우, 애초에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풀이 상당히 제한될 것”이라며 “이는 결국 유럽에서 ESG평가의 축소를 갖고올 위험이 크다”고 밝혔습니다.
국내 금융위, ESG 평가기관 가이던스 제정
국내에서도 얼마 전 금융위가 ‘ESG 평가기관 가이던스’ 제정과 관련된 주요 내용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ESG 평가시장은 등급산출, 데이터 판매, ESG 지수 산출, 자문, 투자솔루션 제공 등 광범위한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2022년 기준 13억달러(약 1조6500억원)을 넘으며, 2025년에는 시장규모가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국내에는 한국ESG기준원(구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서스틴베스트, 한국ESG연구소(구 대신경제연구소) 등 3개사가 대표적인 평가기관입니다. 언론사, CB사, 데이터 분석업체, 최근 회계법인, 신용평가사, 법무법인 등도 서비스를 준비중입니다.
금융위는 “평가사들 간 상이한 평가결과로 인해 ESG 성과개선 동기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고, ESG평가기관의 이해상충 발생 가능성이 있으며, 평가체계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정보이용자의 수용도와 시장 신뢰를 낮춘다”고 설명했습니다.
ESG 평가기관 가이던스는 총 6개장, 21개 조문을 통해 구성되며, 각 기관이 참여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원칙준수 및 예외설명(Comply or Explain) 방식이라고 금융위는 밝혔습니다. 주요 내용은 내부통제체제 구축, 원천데이터 수집 및 비공개정보의 관리, 평가체계의 공개, 이해상충 관리, 평가대상 기업과의 관계 등입니다. 금융위는 1단계로 ‘ESG평가기관 협의체’ 중심의 자율규제로 도입하되 평가기관의 준비를 위해 3개월간 시행을 유예, 2023년 9월부터 가이던스를 시행하며, 2025년부터 법제화를 검토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진입규제를 통해 ‘등록제’ 도입, 최소한의 인적 물적 요건(예, 최소자본금 등)을 규율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대표, “ESG 평가기관 질적 성장 예상, 국내 시장 작아 육성도 필요해”
이러한 정부당국의 움직임에 대해, ESG 평가기관들 또한 각자 다양한 평가모델을 내놓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지난 2월 ‘한국ESG연구소’가 AI를 활용해 ESG 리스크 정보를 분석하고, 미디어의 부정적인 뉴스를 연계하는 미디어 컨트로버시(Controversy, 부정적 이슈)를 제공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제공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2013년부터 설립 초창기부터 AI 기반 ESG 리스크 모니터링 플랫폼을 제공해온 ‘후즈굿’의 경우 지난 5월말 공급망 ESG관리 솔루션(SCRM)을 선보인다고 발표했습니다.
국내에서 17년 동안 ESG 평가를 해온 서스틴베스트도 5월말 AI 기반 ESG 평판 측정 모델인 ‘서스틴 레피(SUSTIN REPi)’를 개발하고 트라이얼 서비스를 출시했다고 밝혔습니다. 레피는 인공지능 언어모델인 버트(BERT)를 황요해 매일 수천 건의 텍스트 데이터를 분석, ESG 평판 관련 사건사고 발생 여부와 그 수준을 평가합니다. 서스틴베스트는 향후 ESG 평판의 추이를 측정한 기업별 레피 인덱스(REPi Index)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기자회견에서는 다양한 질문이 오갔습니다. 우선 “ESG 평가기준이 너무 많아 대응이 어렵다”는 질문에 류영재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업들은 ESG 평가기준을 합쳐달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만일 ESG 평가기준이 하나로 합쳐지면 기업들한테 도움이 될까요. 하나의 평가기준으로는 모든 기업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획일적인 평가기준이 도입된다고 할 경우, 기업들은 평가기준 다양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지요. 평가기준 단일화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또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기업에서 언론 대응이 힘들다보니 언론을 단일화해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100년 전 신용평가 시장도 지금과 비슷했지만, 지금은 S&P, 무디스, 피치 등 과점체제를 유지하고 있지요. 금융위가 ESG 평가기관 가이던스를 내놓으면, 평가기관의 특징과 차별점이 명확해지고 투자자들의 선택이 편리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평가결과가 어느 정도 수렴될 수 있는 긍정적인 역할도 가능해질 것으로 봅니다.”
또 “금융당국의 ESG 평가기관 가이던스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묻는 질문에, 류 대표는 “ESG 평가기관의 질적 수준 향상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이를 100% 준수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원이 필요한데, 현재 국내의 ESG 투자 및 데이터 시장이 크지 않다”며 “ESG 평가기관을 잘 육성해서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을 같이 이뤄내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류 대표는 왜 MSCI와 모닝스타의 서스테이널리틱스 ESG 평가점수가 크게 다른지에 대한 설명을 보충했습니다.
“저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서스테이널리틱스 창업자인 ‘마이클 잔찌(Michael jantzi)’의 경우 환경운동을 하다가 90년대 초반에 창업했고 환경이나 지속가능성에 관심이 많아, 평가기준에 E와 S 가중치가 높습니다(서스테이널리틱스는 추후 모닝스타에 인수됨/편집자주). MSCI는 메인스트림 투자자 대상이다보니 G(지배구조)에 방점이 찍혀있습니다. 향후 펀드가 다양해지면, 환경에 철학을 가진 투자자들은 서스테이널리틱스 데이터를 쓰고, G에 관심있는 투자자들은 MSCI 데이터를 쓰는 등 평가기관들은 서로 보완적으로 존재해나갈 수 있습니다.”
류 대표는 “ESG는 움직이는 과녁과 같아서 글로벌에서 굉장히 많은 논의가 이뤄진다”며 “S&P는 ‘클라이밋(Climate)’을 따로 떼서, ‘클라이밋 & ESG라고 하는 등 ESG가 분리될 수도 있으며, 이럴 경우 평가도 연계해서 진화 발전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제3자 검증, 회계법인 및 기관별 다툼 치열
이어 화제는 AI를 활용한 ESG평가모델에 관한 주제로 옮겨갔습니다. 왜 평가기관들이 잇달아 AI 평가모델을 적용하는지에 대해, 정다솜 선임연구원은 “재무데이터는 매출액, 영업이익 등 숫자가 정량화되어 있지만, ESG데이터는 온실가스 배출량 등 정량 데이터를 제외하면 환경 사고발생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계량화하기 어렵고 텍스트로 된 정보가 많다보니, AI를 활용하면 평가 시간이 줄어든다”면서 “평가 시점과 평가결과가 도출되는 시간 차이가 1년 반 정도 되다보니 신뢰성있는 정보를 이용하기 어려워, AI가 이러한 평가를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SG 공시 의무화로 인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제3자 기관에서 검증하는 이슈에 관한 질문에 대해 류영재 대표는 현장의 분위기를 전해줬습니다.
“현재 보고서 검증을 둘러싸고 매우 다양한 기관에서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재무제표는 회계법인에서 해왔기 때문에 ESG보고서도 회계법인이 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고, 이 입장은 금융위가 서포트합니다. KPC(생산성본부), 표준협회, 능률협회 등 기존에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제3자 검증을 해왔던 측에서는 자신들의 전문성을 주장하고, 이 입장은 산자부가 서포트하고요. 기후변화와 환경, 탄소를 강조하는 쪽은 환경 컨설팅 기관에서 제3자 검증을 주장하는데, 이 입장은 환경부가 서포트합니다. 어떻게 정리될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규제기관에서 어떻게 이를 정리할지, 누가 더 발언권을 갖는지에 따라 그 쪽으로 가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ESG 공시가 의무화된 이후 ESG 평가기관은 어떤 강점을 갖게 될지에 대해 류 대표는 ‘순수한 독립계 리서치기관’인 서스틴베스트의 강점을 강조했습니다.
“금융위의 가이던스는 ‘양날의 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후죽순 난립한 ESG 평가가 정리되는 측면도 있겠지만, 자칫 잘못 칼자루를 쥐게 될 경우 ESG 평가가 낙후될 수 있습니다. 서스틴베스트는 이해상충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습니다. 앞으로 ESG 예측모델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기업의 향후 리스크 확률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점을 강점으로 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K-ESG 평가를 수출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왜 우리나라 기업의 맥락이 있는데, MSCI 평가에 모두 맞춰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반적 보고서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잘 정리하겠지만, 일본 시장은 노무라증권 보고서를 읽습니다. 나라마다 맥락과 규제, 경제발전 단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K-ESG 평가모델을 수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ESG 생태계는 더 성장하고 성숙해질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이번 한주도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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