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유럽연합(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 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 시행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독일 재무장관 크리스티안 린드너(Christian Lindner)는 CSDDD를 언급하며 "지금은 추가적인 공급망 지침이 필요할 때가 아니다"고 밝혔다.
2023년 12월 14일 EU 이사회는 CSDDD 최종 타협안에 잠정적으로 합의한 바 있다.
CSDDD, 기업의 공급망 관리 의무화 지침…
EU 입법자 간 합의는 완료
CSDDD에는 지침명에 공급망이라는 단어가 없는데도 일반적으로 공급망 실사법이라고 불린다. 이는 CSDDD가 인권, 환경 등 기업의 지속가능성 요소를 실사하는 지침이지만, EU 내 특정 기업은 물론 그 기업에 연결된 납품, 협력업체의 인권 및 환경 등의 침해 여부도 조사하여 문제가 발견될 경우 조치를 취하고 그 내용을 공시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EU가 이러한 지침을 도입한 배경에는 분업화, 외주화가 일반화된 글로벌 기업들의 운영 행태가 있다. 공급망 최상층에 있는 기업들이 환경, 인권, 산업안전, 보건 등의 침해에 대한 법적 책임을 하위 협력업체에게 돌리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유럽, 미국의 의류회사들이 현지 업체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외면, 1129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2013년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붕괴사고가 있다.
국제사회가 이를 외면해온 것은 아니다.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기업 책임경영을 위한 OECD 실사 지침’을 발표했고, 국제노동기구(ILO)는 그보다 앞선 1976년 ‘ILO 다국적 기업과 사회정책 원칙에 관한 삼자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UN 또한 2000년대 들어 인권경영에 적극적으로 대처, 2000 년 ‘UN 글로벌 콤팩트’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침들과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사항에 불과해 한계가 있었다. 이에 EU는 2020년 EU 집행위원회에서 법안 계획 발표 후, 2023년 6월 유럽의회가 최종 입장을 확정하고 2023년 12월 14일 EU 이사회가 최종안에 잠정 합의한 바 있다.
발표된 안에 따르면, CSDDD는 직원 수 500명 이상, 전 세계 순매출액 1억5000만유로(약 2174억원)의 EU 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하며, 비 EU 기업의 경우 규정 발효 후 3년이 경과한 시점부터 EU 역내에서 발생한 순매출액이 3억유로(약 4348억원)에 달할 경우 적용된다. 기업은 실사 의무 및 지침 위반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자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할 수 있으며, 위반 시 전 세계 순매출액의 최대 5%에 해당하는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이처럼 CSDDD는 EU 역내 입법자들 간의 합의는 이루어졌으며, 실제 국가별 시행을 위한 최종 문안 표결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 정의를 위한 EU 시민단체(ECCJ, European Coalition for Corporate Justice)는 2024년 3월 최종안 확정을 위한 표결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독일 재무장관, CSDDD 비판하고 나서… “실행 가능하지 않고 관료적”
이런 상황에서 EU 내 유력 국가 중 하나인 독일이 CSDDD에 제동을 걸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이 23일(현지시간) “지금은 추가적인 공급망 지침이 필요한 때가 아니다”며 CSDDD를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린드너 재무장관은 친기업 성향인 자유민주당 대표로, CSDDD의 시행에 부정적인 독일 주요 경제단체들을 대변하고 있다.
로이터는 자유민주당이 정치적 합의가 완료된 CSDDD 시행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고용주 단체 BDA를 비롯한 4개 경제단체들은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Olaf Scholz, 사회민주당 소속)에게 보낸 서한에서 CSDDD는 실행 가능하지 않다며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바 있다.
독일이 EU의 환경 지침에 제동을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3년 독일 자유민주당은 2035년 이후 내연기관차의 신차 판매를 완전히 금지하는 EU 지침에 반발, 합성연료(E-Fuel) 사용 내연기관차는 규제 대상에서 예외 처리하는 것으로 규제를 완화시킨 바 있다.
독일 정부 대변인은 EU 법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논의 방향에 따라 독일이 EU 기구에서 어떻게 투표할 것인지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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