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효재 COR Energy Insight 페이스북 지식그룹 대표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전기화’다. 한국 전력시장의 여건은 근본적으로 바뀌었으므로, 전기화를 수행할 새로운 전략과 계획이 필요하다.”
권효재 COR Energy Insight 페이스북 지식그룹 대표가 <임팩트온>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COR은 CH4, Ocean, Renewable 의 줄임말로 천연가스, 해양, 재생에너지에 대한 정보와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4년 된 모임이다. 현재 에너지 관련 전문가와 관계자 779명이 가입해 활동 중이다.
권효재 대표는 지식그룹뿐만 아니라 여러 언론 인터뷰와 기고를 통해 인사이트를 나눠온 에너지 부문의 논객이다. 그의 인사이트는 현장 경험에서 비롯됐다. 권 대표는 2012년부터 10여 년간 기업의 에너지 분야에 종사했다. 2017년까지는 LNG, 천연가스, 해양 석유 분야에서, 2018년부터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2022년부터는 대학원에서 에너지 정책을 연구하는 박사 과정 중에 있다.
그는 미국의 에너지 부문 석학인 사울 그리피스의 <전기화(ELECTRIFY)>라는 도서도 공번역을 통해 국내에서 곧 발간할 예정이다. 권 대표는 “이 도서는 전기화에 대한 큰 그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다만, 한국과 미국의 전력 시장 구조에 차이가 있는 만큼 이를 반영한 내용을 역자 해제로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임팩트온>은 최근 발표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 대한 평가와 한국이 전기화에 성공하기 위한 전략과 조건은 무엇인지 권효재 대표에게 물었다.
Q. 향후 대한민국의 전기화 방향을 담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이 발표됐다. 이를 어떻게 봤나?
전기본 실무안은 늘어나는 전기 수요를 재생에너지 발전과 원전을 확대하여 충당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실무안은 2038년까지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 센터 등의 전기 추가 수요를 16.7GW로 잡았다. 이를 위해 현재 약 30GW 수준의 재생에너지를 38년까지 120GW로 추가 보급하고, 원전은 대형 3기, SMR 4기(기당 175MW 기준)를 계획에 반영했다. 경직성 발전기가 늘어남에 따라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ESS)는 21.5GW 정도가 38년까지 필요한 것으로 나왔다. 발전소와 ESS를 제외하고 송전망과 배전망 확충에 100조원 정도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며, 21.5GW의 ESS에는 최소 40조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는가다.
Q. 전기본 실무안이 실현되는데, 어느 정도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나?
한전의 누적 적자가 50조원이고, 부채가 200조원이며 추가 채권 발행 한도는 곧 다 찬다. 전국에서 100MW 이상의 규모 있는 재생에너지 발전 개발 프로젝트 99%는 접속 계통이 없다. 이중 다수는 빠르면 31년 늦으면 33년 이후에 접속이 가능하다. 11차 계획대로 추진이 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간단한 산식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한전 적자 50조원 + 부채 상환 100조원(절반) + 계통투자 100조원(최소) + 장주기 ESS 40조원(낙관적 전망) + 수소/암모니아 발전 보조 30조원 (연간 2조원*15년) + RPS 비용 30조원 (연간 2조원*15년) = 350조원(신규 발전기 투자 제외)
전기본 계획 이행에 350조원이라는 큰 비용이 필요하다고 예측된다. 큰 금액인 만큼 실행 방법에 대한 논의가 시급한 상황이다.
Q. 350조원이라는 비용을 볼 때, 전기본 실무안이 제시한 계획을 실현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계획과 현실 사이의 격차는 어디서 발생한다고 보나?
국내 전력시장이 근본부터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80~90년대에는 전력 시장이 삼각 체제로 발전해 왔다. 1)정부가 전원개발촉진법을 기반으로 석탄화력발전소와 원자력 발전소를 짓고 2)발전 사업자가 수출 대기업에 전력을 공급하면 3)수출 대기업이 공급받은 전력으로 제품을 생산하여 수출한다. 수출로 벌어들인 수익이 늘어난 전력 판매 수입으로 한전으로 돌아오고 이는 다시 발전 사업에 투자되면서 선순환 구조로 경제와 전력 산업이 성장해 왔다. 정부가 법을 기반으로 발전사업을 주도하므로, 복잡한 인허가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었고, 기업은 저렴하게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이 체제는 누가 무엇으로 얼마큼의 이익을 얻는 지가 명확하고,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전력 수요의 꾸준한 증가로 인해 잘 운영되어 왔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확대되면서 삼각 체제에 균열이 생겼다.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예전보다 많은 토지를 필요로 하므로 정부가 전처럼 전원개발촉진법으로 대규모 개발을 촉진하기에는 부담스러운 환경이 됐다. 원전 역시 후쿠시마 사고 이후 대규모 증설은 정치적으로 어려워졌다. 재생가능 발전은 설비 이용률 저하와 간헐성 이슈로 LCOE(균등화발전비용, 발전설비의 전 수명주기에 걸친 비용을 집계) 이외 부대 비용이 다른 발전원 대비 높은 이슈도 있다. 예컨대 태양광 발전은 원자력 발전과 비교하면 송전선로 이용률이 3분의 1 이하이니,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확대할수록 이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투자가 더 많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 추가 투자를 누가 부담할지 명확하지 않아 정부의 정책 추진의 동력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삼각 체제의 선순환이 약해진 것이다.
Q. 전력산업 성장의 기반이 됐던 삼각 체제가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전기화가 이뤄지려면 새로운 성장 전략이 필요할 듯싶다.
새로운 삼각 체제를 구상해 봤다. 먼저 정부는 과거 두 번 내고 사라진 5개년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새롭게 짜야 한다. 현재의 전기본 계획은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을 기준으로 세워졌기에 환경 목표가 상당히 강조되어 있다. 경제성과 안보, 환경 목표를 균형적으로 다룬 계획이 현실성을 갖출 수 있다. 정부는 이 계획을 기반으로 국가계획입지단지로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단지를 조성해야 한다. 다만, 발전사업자들은 수익에 대한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비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대규모 투자에 앞장서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는 특정 발전원의 발전량 비중이 전체의 2~3% 정도가 될 때까지는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많은 발전사업자들의 투자하고 혁신을 일으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많은 사업자들이 시장에 들어오면, 경쟁을 통해 기술은 발전하고 비용은 줄어들 것이다. 정부는 시장이 커지고 경쟁이 활성화됨에 따라 정책 지원을 단계적으로 줄여가면 된다. 수출 대기업은 이곳에서 재생에너지를 공급받아 핵심 수출 시장에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핵심 고객들을 유지해야 한다. 수출 대기업이 발생시키는 세수와 전력 수요는 결국 발전 부문의 수요로 연결되어, 새로운 삼각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Q. 새로운 삼각 체제가 작동하려면, 수출 대기업의 수익이 전력 산업으로 유입돼야 할 텐데, 충분한 유인이 있는지 궁금하다.
수익은 신사업 유치, 마케팅, 전기요금 상향이라는 세 가지 경로로 발전 부문에 유입될 수 있다. 먼저, 발전 부문과 연관된 신사업이 동력을 가지고 추진돼야 한다. 예컨대, 전기 사용량이 많은 AI 데이터센터를 지역에 유치하는 사업이 국가적인 장기 과제에 포함되는 게 필요하다. AI 산업의 규모와 매출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AI 서비스를 생산하는 핵심 인프라인 AI 데이터센터의 확충은 국가 안보와 경제 성장에 직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AI 산업은 전기가 핵심 연료이며, 장기가 고정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하고 이를 무탄소 전원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미 수도권은 전력 수요 과다로 AI 데이터 센터 설립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지역에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단지를 조성하고, 발전 단지 인근에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을 규모의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를 설치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무탄소 전력 공급,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 AI 데이터 센터 인프라 구축 등의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된다. AI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큰 틀에서 생각하고 추진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생각할 점은 기업들이 전기 요금 인상을 포함해 추가로 발생하는 탄소 중립 이행 비용을 일종의 마케팅 투자로 보는 발상의 전환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10대들은 환경과 기후 위기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하며, 재생에너지를 중시한다. 이들은 환경과 기후 위기, 재생에너지에 민감하지 않은 기업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애플과 같은 인지도가 높은 글로벌 기업들이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사용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수출 대기업이 해외에 물건을 잘 판매하기 위해서라도 재생에너지 사용을 대폭 늘려야 하고, 다수의 기업들이 바이어들에게 관련 압력을 받고 있는게 현실이다. 국내 수출 대기업인 삼성, 현대차, SK그룹의 마케팅 비용만 해도 매년 15조원이 넘으므로 재생에너지 사용에 따른 추가 비용을 이런 차원으로 인식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Q. 전기요금 인상도 하나의 유인이라고 했는데, 적정한 인상 수준을 어느 정도로 보는가?
앞서, 15년간 350조원이 전기본 계획 이행에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전기 사용자들이 이를 분담하면 매년 25조원 정도다. 한전의 현재 매출이 88조원임을 고려하면 전기료를 약 30% 올려야 한다. 이는 한 번에 올리거나 점진적으로 꾸준히 올려야 한다. 한 번에 30%를 올리지 못한다면 매년 4%씩 향후 15년간 전기료를 계속 올리는 정책이라도 추진해야 한다.
산업용 전기 사용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60%가 넘는 상황에서 기업들에게는 현실적인 부담이 되므로, 유럽처럼 산업용 전기요금과 일반ㆍ가정용과는 차등화하거나, 별도의 지원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건 방향성이다. 장기적으로 전기요금 인상폭을 최소화하려면 지속적으로 전력 산업에 투자가 이어지고, 인프라가 보강돼야 한다. 인프라 보강의 열쇠를 쥔 한전이 구조조정까지 하는 상황에서 전력 품질이나 공급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으므로 더 미룰 일이 아니다. 원가 연동 요금제 적용을 정치적 당파와 입장에 무관하게 실시해야 한다.
Q. 전기 요금이 인상되면, 기업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부담도 커질 텐데 이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독일 사례가 참고될 만하다. 한국과 독일이 발전소에 지불하는 전기도매가격은 유사하다. 예를 들어 양국 모두 전기도매가격은100원/kwh이라고 할 때, 소비자가 실제 부담하는 소매가격의 차이는 다른 요인에서 발생한다. 한국의 전기소매가는 부가세 포함 165원/kwh 수준인데 그 중 망 사용료, 기후환경비용, 기타 수수료가 50원, 부가세가 15원을 차지한다. 독일의 전기소매가는 360원/kwh 수준이다. 여기에는 망 사용료 100원, 세금 100원, 기후환경비용 60원이 포함된다. 독일은 한국보다 망 이용료, 기후환경비용, 세금이 모두 비싸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독일은 막대한 투자를 통해 화석연료 기반에서 무탄소 에너지 기반으로 옮겨가는 에너지 전환을 20년째 실행 중이다.
독일도 투자 부담을 누가 지느냐가 이슈였지만, 결국 국민 모두가 고루 부담해야 한다고 판단하여 실행 중이다. 또한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야만 기후 위기도 극복하고 에너지 전환도 가능하다고 판단하여, 그만큼 에너지 요금을 지속적으로 높였다. 시민과 기업들은 높아진 에너지 비용에 직면하여 직접 투자하여 자체적으로 태양광 패널 등을 집에 설치하여 에너지를 생산하거나, 기업들도 장기 고정가로 전력을 구매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시설에 투자를 하는 식으로 적응했다. 우리보다 위도가 높고 태양광 발전 여건이 나쁜 독일이지만, 전기요금이 부담스러우므로 독일 시민들은 자연히 전기를 덜 쓰고, 집집마다 태양광 패널과 ESS를 설치한다. 이러한 투자를 통해 요금은 비싸지만,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전기 구매량은 줄어든다. 이러한 시설을 설치한 경우 전기요금은 우리나라보다 3배나 비싸지만, 전기 구매량이 줄고 남는 전기는 되팔 수 있으므로 실제 지불하는 전기요금은 우리와 비슷하거나 더 적게 낸다.
Q. 이런 에너지 정책이 실현되려면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
정치권은 에너지 정책이 효과를 보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그 혜택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잘 설명하여 전환 단계를 뚫고 나가야 한다. 이런 비전이 담긴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새롭게 준비하는 게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이런 논리다. 화석연료 발전은 필연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화석연료의 가격과 수급에 따라 가격이 급변동하는 위험이 있다. 장기적으로 연료비 비용이 거의 없는 무탄소 발전 비중을 높이면 공급 비용이 떨어지며, 전기화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전기차의 연료 비용이 휘발유나 LPG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전기 택시가 인기가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우리나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에너지 전환과 분산형 자가발전, 다양한 에너지 신산업 육성을 추진하면, 그 혜택은 장기적으로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정부가 사활을 걸고 원전을 대거 건설할 때도 미래를 보고 막대한 투자를 한 셈이지만, 그 혜택은 지금까지 소비자들이 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