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선 교체로 미국 전역의 전력망 용량을 크게 확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9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오래된 전선을 첨단 소재로 교체하면 기존의 송전 용량을 두 배 이상 늘릴 수 있으며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사용률 90%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리드 부족, 재생에너지 확충의 대표적 장벽…
첨단 소재로 송전선 교체하면 싸고 빠르게 용량 확충 가능
재생에너지 확대에 가장 큰 장애 요인 중 하나는 그리드 부족이다. 기존의 송전망은 도시 근처의 석탄화력발전소를 기준으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탄력성이 떨어져 생산량 조절이 어려운 도시 외곽 재생에너지 발전소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전력망이 노후화됐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복잡하다. 대부분의 미국 전력망은 1960~1970년대에 건설돼 설치한 지 25년이 넘어 매우 취약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송전선 교체로 전력망의 용량을 두 배 확대할 수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9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이하 UC 버클리)가 발표한 ‘최첨단 송전선 교체 기술 보급의 장애 요인을 극복하기 위한 프레임워크(A Framework for Overcoming Barriers to Advanced Reconductoring Deployment)’와 같은 날 비영리단체 그리드랩(GridLab)과 에너지 이노베이션(Energy Innovation)이 발표한 ‘최첨단 송전선 교체를 통한 그리드 현대화 가속화(Accelerating Grid Modernization with Advanced Reconductoring)’ 보고서에 따르면, 보다 저렴하고 빠른 방법으로 송전 용량 증대가 가능하다. 기존 송전선을 최첨단 소재로 만든 케이블로 교체하면 미국 전역의 그리드 용량을 약 두 배로 확대, 더 많은 풍력과 태양광 등 청정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WSJ은 해당 기술이 다른 나라에서는 널리 사용되고 있으나, 미국 내 보급 속도는 더디다고 지적했다. 원인으로는 관료적인 규제와 전력업체들이 느끼는 기술에 대한 생소함을 꼽았다.
UC 버클리의 선임 연구원 아몰 파드케(Amol Phadke) 박사는 "우리는 (송전선 내) 전도체(전기적 전류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물질) 교체를 통해 확대할 수 있는 송전 용량을 보고 크게 놀랐다"며 "송전선 교체가 전력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솔루션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WSJ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의 대부분의 송전선은 알루미늄 가닥으로 이루어진 강철 코어로 구성돼 있는데, 이는 이미 20세기식 방식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탄소 섬유와 같이 더 작고 가벼운 코어로 더 많은 양의 알루미늄을 활용한 케이블 형태의 송전선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고급 케이블은 기존 모델보다 최대 2배 더 많은 양의 전류를 흘려보낼 수 있다.
노후화된 송전선 교체는 새롭게 송전선을 건설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 가능하다. 두 개의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원들에 의하면, 최첨단 전도체로 송전선을 업그레이드하면, 신규 송전선 건설 비용의 절반도 안 되는 돈으로 기존 송전선로의 용량을 거의 두 배 증가시킬 수 있다. 만일 미국 전역에서 송전선 교체가 가능하다면, 2035년까지 현재보다 4배 많은 송전 용량을 확보할 수 있다. 전력망이 부족해 가동되지 못하고 있는 수천 개의 재생에너지 발전 프로젝트들이 드디어 전력 생산을 시작, 소비자에게 닿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파편화된 미국 전력업계… 일관적이고 효율적인 정책 추진 어려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송전선 교체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신규 기술 적용에 대한 규제와 파편화돼 있는 미국 전력업계의 특성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전력망은 3200여개의 서로 다른 전력업체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일관되고 통일성 있는 송전 인프라 업그레이드가 어렵다는 의미다.
신기술 도입을 꺼리는 전력업체들의 태도도 원인 중 하나다. 첨단 전도체 제조업체 CTC 글로벌(CTC Global)의 최고기술책임자 데이브 브라이언트(Dave Bryant)는 “많은 전력업체가 위험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규제 또한 현 상황을 부추기고 있다. WSJ에 따르면, 미국 전력업체들은 기존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는 것보다 새로운 송전망을 건설할 때 더 많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위험을 감수하며 신기술을 도입할 유인이 없는 것이다. 일부 규제당국이 전도체 교체 사업 자체를 꺼려하는 것도 이유다. 전도체 교체는 장기적으로는 비용이 저렴하지만 초기 투자 비용은 높기 때문이다.
그리드랩의 선임 프로그램 매니저 케이시 베이커(Casey Baker)는 “(전도체 교체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은 규제당국의 근시안적이고 관료적인 사고방식”이라며 “지금은 그리드가 매우 빠르게 성장해야 하는 시기인데 기존의 절차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몬태나주에서 전력업체들에게 첨단 전도체로 송전선 교체 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법안이 통과된 것이다. 최근 전력업체 노스웨스턴 에너지(Northwestern Energy)가 산불 방지를 위해 노후화된 송전선 일부를 첨단 전도체로 교체했는데, 지역 의원들이에 크게 만족한 것이다.
WSJ은 데이터 센터의 증가, 전기차 확대로 인한 전력 수요 증대 등 미국 내 그리드 부족 문제는 계속해서 심화되고 있다며 업계 내 전도체 교체 기술 보급은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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