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시각) 글로벌 석유기업 셸(Shell)이 2021년 네덜란드 법원이 내렸던 탄소 감축 명령에 항소했다.
2021년 5월 네덜란드 헤이그 지방법원은 셸에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탄소배출량을 45% 감축할 것을 명령한 바 있다. 환경단체 ‘지구의 벗 네덜란드 지부(Friends of the Earth Netherlands)’가 1만7000명의 공동 원고 및 시민단체 6곳과 함께 제기한 소송으로, 정부가 아닌 기업의 감축 책임을 묻는 최초의 판결이었다.
이번 항소 결과, 유럽 석유산업 향방에 분수령될 것
블룸버그는 이번 항소의 결과가 유럽의 석유산업에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석유 및 가스 가격이 급등하자 에너지 기업들이 기록적인 수익을 달성하면서, 유럽 에너지업계는 재생에너지 전환을 촉진하는 대신 화석연료로 다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인 바 있다.
셸의 대변인은 "전 세계가 기후변화에 대한 긴급한 조치를 해야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우리는 이를 위한 방법에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며 "2021년 판결은 에너지 전환을 위한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해당 판결은 기후 변화 대처에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며 네덜란드 법에 따른 법적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법원은 환경단체 ‘지구의 벗’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으며, 2030년까지 배출량 45% 감축 명령을 내릴 때도 에너지 전환에 미칠 영향, 기업의 경제성, 에너지 공급 안정성에 대해서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셸 측 변호사 단 룬싱 슈를러(Daan Lunsingh Scheurlee)는 항소 첫날 “에너지 가격이 비싸져 생활에 부담을 주거나 요리를 하고 싶을 때 가스레인지를 켤 수 없다면 국민들은 에너지 전환에 대한 지지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의 벗, “셸의 항소는 기후 위기에 처한 모든 사람에 대한 모욕”
반면 지구의 벗 네덜란드 지부 대표 도널드 폴스(Donald Pols)는 셸의 최근 행적이야말로 2021년 법원 판결의 필요성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셸이 자체적으로 추진하던 감축 목표량을 하향 조정해 발표한 것을 꼬집은 것이다. 셸은 지난 3월 14일(현지시각) 기후 전환 로드맵 목표를 개정한 ‘에너지 전환 전략 2024(Energy Transition Strategy 2024)’ 보고서를 발표, 2030년 Scope3 저감 목표를 이전의 20%에서 15~20%로 약화시킨 바 있다.
블룸버그는 셸의 이전 목표도 절대량이 아닌 에너지 생산 단위에 따른 일정 비율로 책정함으로써 비판을 받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생산량을 늘리면 배출량이 증가하더라도 약속을 지킨 셈이 되기 때문이다.
폴스 대표는 “셸의 기후 정책은 이미 평균 이하였으며, 새 CEO가 부임하면서 더욱 나빠졌다”며 “셸은 배출 목표를 하향시킴으로써 규제 격차가 있다는 우리의 주장을 증명해줬다. 이것은 기후와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는 모든 이들을 향한 모욕”이라고 말했다.
셸과 지구의 벗은 4월 12일(현지시각)까지 법정 심리에 들어간다. 셸의 승소할 경우, 1년 전 취임한 와엘 사완(Wael Sawan) CEO는 투자자들을 위한 재무적 수익 목표에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지만, 항소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6년 이내에 2021년 명령을 이행해야 한다.
석유기업의 실질적인 Scope3 감축 방법은 소매 사업장 매각뿐…
매각은 기후변화 완화에 도움 안 돼
법원 판결에 따르면, 셸은 세 가지 유형의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기업의 직접적인 사업 운영에 의한 배출량인 Scope1, 전기, 난방 등 기업의 간접 배출량인 Scope2, 그리고 전체 공급망과 고객으로부터 발생하는 배출량인 Scope3이 그것이다. 셸의 배출량 중 90% 이상은 감축이 가장 까다로운 Scope3 배출량이다.
법원은 당시 셸의 배출량 감축 방법을 규정하지는 않았으나, '엄격한 최선의 노력 의무'를 부과했다. 이는 공급업체에 기업 장책 등을 통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셸의 Scope2, 3 배출량을 감축하라는 의미다. 쉬운 일은 아니다.
모닝스타의 주식 리서치 디렉터 알렌 굿(Allen Good)은 "석유회사들이 Scope3 배출량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매각뿐"이라며 "셸이 주유소 등이 속한 소매 사업부를 매각하면 Scope3 배출량 감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해당 소매 사업부를 인수한 기업이 계속해서 화석연료를 일반 소비자에게 공급할 것이므로 기후변화 완화에는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셸은 이미 전기자동차 충전 수요 증가 대응을 위해 향후 2년간 1000개의 소매 사업장을 매각할 계획이며, 이는 전체 운영 사업장의 약 4%에 해당한다.
소매 사업부 매각이 재무 상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2023년 셸의 현금흐름 중 4분의 3은 석유 및 가스 생산에서 발생했다.
한편 굿 디렉터는 "셸이 소매 사업장을 전기차 충전소로 전환하다면, 궁극적으로 탄소집약도를 낮추고 전기차 보급 확대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주유소를 대규모로 매각하기보다는 전기차 충전소로 전환할 것을 조언했다.
- 엑손모빌, 친환경 에너지 목표 달성 어렵다고 인정
- 【월간 ESG 아카이빙】3월- 에너지&산업
- 셸, 연간 500개씩 주유소 폐쇄하고, 전기차 충전소 20만개까지 늘리는 혁신 계획 발표
- 셸, 탄소 감축목표 하향 조정…BP에 이어, 퇴보하는 화석연료 기업들
- 주가 하락에 뿔난 행동주의 투자자, BP에 청정에너지 투자 60% 줄여라
- 【Trend Insight】엑손모빌은 왜 주주들을 고소했을까? 달라진 엑손모빌 움직임과 기후 대응 전략들
- ING, 셸 상대로 승소한 기후단체에 고소당해… EU는 은행 리스크 관리에 ESG 통합 요구
- 미 대법원, "기업이 공시 안했다고 해서 소송을 제기할 순 없다" 판결
- 셸 주주, 스코프 3 결의안 거부…셸은 미국으로 본사 이전을 논의 중
- 셸의 13억 달러 나이지리아 유전 매각 거부당해…석유 누출 책임은 누가 지나
- LNG 확대하려는 셸에 주주들 제동…'전환 전략 검토' 주주결의안 제출
